하나님께서 디자인 하신 교회는 초대교회나 현대교회나 차별이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과 현대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큰 차이가 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후에 세워졌는데, 그 교회는 생동감이 넘치는 공동체, 이 세상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공동체였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들의 삶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2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는, 그들이 많은 핍박을 받은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받은 것이다. 핍박과 칭송이라는 단어가 초대교회 성도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불신자들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면서도, 자신들이 따라 갈 수 없는 삶, 부인할 수 없는 삶, 그 삶의 차이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칭찬할 수 밖에 없었다. 칭찬받을 만한 일 중에 중요한 하나가 사랑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우리들을 향하여 개독이라 한다. 칭찬보다 악한 평가를 할 때가 더 많지 않는가? 우리들이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빛이 되지 못함으로 받는 평가라면, 우리들이 깊이 반성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것을 회개해야 한다.
Ⅰ. 정신 차리고 기도하라(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했다.
“만물의 마지막”은 곧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시작되는 인류의 종말을 말한다. 이 마지막은 단순한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헬라어의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본래 완성을 의미한다. 만물의 결산 그리고 내 인생의 결산의 때가 다가 오고 있다는 뜻이다. 성도들은 “마지막” 이 가까울수록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단 심각한 죄를 짓고 징계를 받고 나면, 얼마 동안은 모든 일에 조심하게 된다. 그러나 곧 긴장을 풀게 되고, 점점 나태해지다가 나중에 처음 상태보다 더 안일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창11:2-4) 하나님의 징계는 인간에게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한동안은 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한다. 그러나 먹구름이나 폭풍 대신 맑은 날씨만 계속되면 이전의 사악한 심성이 차츰 고개 들게 되고 대담해진다.
깨어 있다는 말이 무엇인가?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내 인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다.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26:39)라고 기도하셨다. 우리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본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끊임없이 내 인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출 때 이루어 진다.
Ⅱ.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8,9)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했다.
수직적인 관계 즉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기도해야 되고, 수평적인 관계 즉 대인관계에서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성도 여러분!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후회없는 삶을 원하는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사랑이다.“무엇보다도” 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마지막 때를 살아 가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하는데 다른 어떤 것들보다 사랑을 위에 두고, 최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뜨겁고 진지하게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울 수록 사랑이 식어지게 될 것이라 경고하셨다. 마24:10~12에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했다. 사랑이 식어 지는 것이 종말의 특징 중에 하나이다.
우리들이 서로 사랑할 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면서 어떻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겠나? 8절하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했다. 즉 피차간에 있는 허물을 덮어 주고, 서로를 세워 주고자 하는 사랑은 죄를 가리운다(잠10:12). 성도들은 자신의 죄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무조건적으로 용서되었기 때문에 더욱 더 타인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죄를 덮는다는 뜻이 무엇인가? 죄를 용서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리워 진다. 덮는다는 것은 죄의 용서를 의미한다.
롬4:7,8에서 복이 있는 사람을 정의 하기를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예수 믿고 받은 복이 많다. 그 중에서 하나님께 죄를 용서 받은 복이 놀라운 복이라는 사실을 믿는가? 우리들은 죄 용서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죄사함의 행복을 안다면,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남의 죄악을 드러내고, 공격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덮어 주고 용서하시기 바란다. 용서가 있는 가정, 용서가 있는 교회, 용서가 있는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 그렇지 못하면 끝없는 비난과 비판과 상처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용서가 없는 그 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 곳에서부터 지옥이 시작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사랑하되 지속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실제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했다. 성도 여러분! 본문의 사랑하라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우리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명령에 순종하려면,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성도 여러분! 나에게도 ‘하나님! 다른 사람은 다 돼도 그 사람만은 안돼요’ 하는 사람이 있나? 그 사람 마저도 사랑하라.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다. 마5:44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들이 남을 대접하면서도 기쁨이 없을 때가 있다. ‘이것을 내가 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불평하며 행할 때도 있다. 왜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으로 하나? 그것은 조건부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이렇게 해 주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섬기다가 좌절한다.
우리들이 사랑을 베풀되 기대를 걸지 않고, 섬기고 사랑할 때, 그 만큼 순수하고, 투명해 진다. 사랑의 위기가 어디에서 생기나? 내 속에 있는 기대 때문이다. 내가 이 만큼했으면, 너도 이 만큼해야지 하는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원망하고 좌절한다. 성도 여러분! 말씀의 가르침 따라 원망없이 기쁜 마음으로 섬기고, 사랑하므로 마지막 날을 지혜롭게 대비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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